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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항산지웅입니다.
지중해의 중앙, 작은 섬나라 몰타의 수도 **발레타(Valletta)**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중세 유럽 기사단의 이상이 실현된 살아 있는 역사 현장입니다. 발레타는 오스만 제국의 침공을 이겨낸 성요한 기사단(Knights of St. John)이 직접 설계하고 건설한 요새 도시로, 유럽의 군사·종교·건축·문화가 절묘하게 융합된 공간입니다. 오늘날에도 발레타는 그 당시의 흔적을 거의 완전한 형태로 간직하고 있으며, 그 역사적 가치로 인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성요한 기사단이 어떻게 발레타를 건설했는지, 그 도시가 어떤 방식으로 기사단의 철학과 전략을 반영하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도 어떻게 그 유산이 보존되고 있는지를 심층적으로 탐구합니다.
성요한 기사단의 기원과 몰타 도착
성요한 기사단(Knights Hospitaller)은 11세기 예루살렘에서 설립된 종교 기사단으로, 처음에는 병자와 순례자 보호를 목적으로 병원을 운영하던 ‘호스피탈러’ 조직이었습니다. 하지만 1차 십자군 전쟁 이후, 이들은 무장 조직으로 발전하여 병원 기능과 군사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게 되었고, 점차 교황청의 지원을 받아 가톨릭 세계의 군사·종교 권위체로 자리잡았습니다.
예루살렘이 이슬람 세력에 의해 함락된 이후, 기사단은 키프로스 → 로도스 → 몰타로 본거지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1530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는 기사단에게 몰타 제도 전체와 **트리폴리(현재 리비아 서부)**를 하사하였고, 이에 따라 기사단은 몰타를 새로운 전략적 거점으로 삼게 됩니다. 당시 몰타는 척박한 섬이었으나, 지중해 중앙이라는 지정학적 요충지라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1565년, 오스만 제국은 대군을 동원해 몰타를 공격합니다. 이 역사적 사건인 **대몰타 공방전(Great Siege of Malta)**은 유럽과 이슬람 세계 사이의 전략적 대결의 상징이었습니다. 성요한 기사단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이는 가톨릭 세계 전체의 영웅으로 기사단의 위상을 재확립시켜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전쟁의 영웅이자 당시의 기사단장(그랜드 마스터)이었던 **장 파리소 드 라 발레트(Jean Parisot de la Valette)**는 그 승리를 기념하고, 향후 방어를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도시를 계획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발레타입니다.
발레타의 도시 설계와 기사단의 철학
발레타는 1566년, 전투에서 살아남은 기사단의 손에 의해 착공되었으며, 그 명칭 역시 **‘라 발레트의 도시’**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는 단지 새로운 수도가 아닌, 기사단의 전략·신앙·이념을 구현하는 이상적인 도시였습니다. 도시 건설은 이탈리아 군사 건축가 **프란체스코 라파렐리(Francesco Laparelli)**가 맡았으며, 이후 제자인 **멜키오레 데 카파라(Melchiorre de Caprara)**가 완성합니다.
라파렐리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진보된 르네상스식 요새 건축 기술을 기반으로 발레타를 설계했습니다. 발레타는 격자형 도시계획, 고지대에 위치한 자연 요새, 항구를 끼고 양방향으로 뻗은 방사형 거리 구조, 그리고 바다를 마주한 방어벽 및 포탑이 특징입니다. 특히 도시 외곽에는 **세인트 엘모 요새(Fort St. Elmo)**가 자리잡아 항구 입구를 강력히 방어하며, 이는 발레타 방어의 핵심이었습니다.
기사단은 각국 출신 기사들이 모인 다국적 조직이었기 때문에, 발레타 내에서도 **‘8개 언어 관구(Langues)’**로 나누어 행정과 숙소, 예배를 구분했습니다. 이에 따라 발레타에는 각 관구별로 자치 건물과 교회, 병원이 존재했고, 이는 도시 내 다문화적 구조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기사단의 중심 교회인 **성 요한 공동대성당(St. John’s Co-Cathedral)**은 단순한 예배당을 넘어, 기사단 각 관구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외관은 절제된 바로크 양식이지만, 내부는 금빛 장식과 프레스코화, 조각상, 회화 등으로 매우 화려하게 꾸며져 있으며, 특히 **카라바조(Caravaggio)**의 작품이 있는 예배당은 예술사적으로도 큰 가치를 지닙니다.
기사단은 또한 **병원(Holy Infirmary)**을 지어 부상병과 주민을 치료했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병원 건물 일부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런 시스템은 도시 전체를 하나의 **‘기사단국가’**로 기능하게 만들었고, 발레타는 단순한 수도 이상의 복합 기능 도시로 발전했습니다.
오늘날 발레타에 살아 있는 기사단의 유산
2025년 현재 발레타는 몰타의 행정수도이자 유럽 문화유산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도시는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그 역사적 구조와 건축 양식이 대부분 보존되어 있어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닙니다.
발레타의 **중앙에 위치한 기사단 궁전(Grandmaster’s Palace)**은 현재 몰타 대통령의 공식 집무실과 국회로 사용되고 있지만, 내부의 회랑, 갑옷 전시관, 무기고, 중세 회의실 등은 여전히 관람객에게 공개되고 있습니다. 이 궁전은 정치 권력의 상징이자 기사단 체계의 핵심 공간이었으며, 다양한 유럽 왕가와 외교 관계를 담당하던 외교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세인트 엘모 요새(Fort St. Elmo)**는 오늘날 몰타 국립 전쟁박물관으로 개조되어, 대몰타 공방전 당시의 전략 지도, 무기, 갑옷, 전술 장비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기사단의 방어 전략과 당시의 군사 기술, 유럽 전역에서 보낸 원조 물자 등을 실감 나게 접할 수 있습니다.
또한 거리 곳곳에는 여전히 **기사단 문양(Cross of Malta)**이 새겨진 건물, 석조 기념비, 수도원, 공공우물, 옛 의약 창고 등이 남아 있어 당시의 도시 운영 방식과 민생 시스템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팔라초 파리소(Palazzo Parisio)**는 과거 고위 기사들이 사용하던 귀족 저택이며, 현재는 미술관 및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관광뿐 아니라 문화예술 행사도 활발히 열리고 있으며, 발레타는 2018년 **유럽 문화수도(European Capital of Culture)**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각종 국제 연극제, 바로크 음악 축제, 현대 미술 전시가 도시 전역에서 펼쳐지며, 기사단의 고풍스러운 공간과 현대 문화가 공존하는 특별한 도시 경험을 선사합니다.
결론
발레타는 단순한 유럽 소도시가 아닙니다.
이곳은 성요한 기사단의 신념과 전략, 예술과 건축, 그리고 유럽 문명이 집약된 도시입니다.
16세기 중반, 전쟁의 폐허 속에서 출발한 이 도시는 철저한 계획과 비전을 통해
단단하고 아름다운 요새로 거듭났으며,
지금까지도 그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습니다.
몰타를 여행하거나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발레타는 반드시 둘러봐야 할 핵심 장소입니다.
단순한 관광을 넘어, 그 거리를 걷고, 그 건물 안을 들여다보며,
중세 유럽의 기사단 정신을 직접 느껴보시길 권합니다.
발레타는 과거가 아닌, 살아 있는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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