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항산지웅입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직장 생활, 업무 스트레스, 애매한 인간관계 속에서 어느 순간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이었나?’라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 질문이 쌓이다 보면 결국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죠. “멈춰야겠다.” 저 역시 그렇게 퇴사를 결심했고, 어딘가로 떠나야겠다는 막연한 갈망 끝에 만난 게 바로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 그중에서도 프랑스길이었습니다.
800km라는 긴 여정을 하루에 조금씩 걷는 동안, 나는 나 자신과 다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은 퇴사 후 도보 여행을 고민하는 이들, 또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실제 경험기입니다. 이 길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감정을 겪었는지를 솔직하게 나눠보려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또 묻는 길 위의 시간
회사에 마지막 출근을 한 날,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더 이상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에 눈물이 날 뻔했죠. 그러나 며칠 후, 그 자유가 막막함과 불안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물음이 끊임없이 머리를 채웠습니다.
그래서 떠났습니다. 스페인 북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 **생장피에드포르(Saint-Jean-Pied-de-Port)**에서 출발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이어지는 800km의 도보 여행.
그 여정은 겉보기에 단순한 ‘걷기’일 뿐이지만, 내면의 대화를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하루 평균 25km, 약 6~8시간을 걷는 동안 나와 마주하는 건 오직 나 자신 뿐이었습니다. 핸드폰은 멀리했고, 음악도 꺼두었습니다. 처음 며칠은 회사 생활에서 받은 상처, 인간관계에서의 후회, 실패했던 순간들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어떤 날은 눈물이 저절로 흘러나왔고, 어떤 날은 길가에 앉아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길은 묵묵하게 내게 말해줬습니다.
“괜찮다. 너는 잘 버텨왔고, 지금 여기까지 왔잖아.”
그렇게 걷다 보니 과거의 실수는 무게를 잃었고, 자책은 자각으로 바뀌었습니다.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조금 비틀거려도 인생은 계속된다는 걸 프랑스길이 가르쳐줬습니다. 회사라는 정체성이 사라지고 난 뒤, 비로소 내 이름, 나 자신과 다시 친해지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단순한 하루의 반복이 만들어낸 마음의 안정
퇴사 후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루틴’이 사라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시간표 없는 하루는 달콤하기보다 불안했고, 느슨해진 일상은 방향을 잃은 배 같았습니다. 하지만 프랑스길은 그 단순한 걸음 속에서 새로운 루틴을 만들어주었습니다.
🕕 06:00 기상 – 대부분의 알베르게(순례자 숙소)는 이른 아침부터 움직임이 시작됩니다.
🕡 06:30~07:00 출발 – 어두운 새벽, 헤드랜턴을 켜고 걷기 시작합니다.
☕ 09:00 휴식 – 작은 바(Bar)에서 커피와 크루아상으로 아침을 마칩니다.
🚶 11:00~13:00 도착 – 숙소에 도착하면 체크인, 샤워, 빨래 후 휴식.
🍽️ 18:00 저녁식사 – 순례자 메뉴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동행들과 대화도 나눕니다.
📓 21:00 취침 – 일기 쓰고, 조용히 불을 끄는 시간.
이 루틴은 단조롭지만, 혼란스러운 내면을 정리하는 데 놀라운 효과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어디까지 가야 하지?’라는 목표가 명확했고, 그 목표를 이루면 뿌듯함이 찾아왔습니다.
과거 회사에서의 하루가 성과 중심의 시간이었다면, 순례길의 하루는 존재 중심의 시간이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아무 말 없이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하루.
하루가 반복되면서, 내 안의 불안은 줄고, 마음은 조금씩 평온해졌습니다. 아침마다 걷기 전에 ‘오늘 하루도 내 속도대로 걷자’라고 다짐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내 삶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감정: 걷는 동안 쏟아진 모든 감정이 결국 나였다
프랑스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감정의 진폭이 유난히 컸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매일 다른 길, 다른 날씨, 다른 순례자들과 마주하면서 내 안의 감정들도 들쑥날쑥하게 튀어나왔습니다.
어느 날은 갑자기 흐느끼듯 울었습니다. 평범한 들판 위로 햇살이 쏟아지는데, 그 순간 **“내가 살아 있구나”**라는 감정이 가슴을 가득 채워 터진 것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죠.
또 어떤 날은 비 오는 날씨에 배낭이 젖고, 발에 물집이 터졌습니다. 지쳐서 주저앉아 눈을 감았더니, 옆에서 한 프랑스인이 나눠준 초콜릿 한 조각. 그 작은 친절에 또 한 번 울컥했습니다.
이 길에서 만나는 감정은 전부 진짜였습니다. 기쁨, 후회, 두려움, 회복, 자유, 평온. 일상 속에서는 바빠서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이 길 위에서는 차례차례 드러났고, 나는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 감정들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나라는 사람은 복잡하지만 소중하고, 부족하지만 충분하다는 것.
프랑스길은 내 감정의 사전(辭典)이었습니다. 잊고 있었던 단어들이 다시 마음속에 살아났고, 나는 그 단어들을 다시 사랑하게 됐습니다.
결론
퇴사 후 산티아고 프랑스길을 걷는다는 건 ‘도피’가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의 소음을 멀리하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가장 용기 있는 선택입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더 이상 ‘직장인 누구’가 아니었고,
‘성과를 내야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한 사람의 이름으로, 걷는 존재로, 그 자체로 충분한 인간이었습니다.
만약 당신도 지금 막막하다면,
혹은 삶의 방향을 잃었다고 느낀다면,
이 길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프랑스길은 당신을 판단하지 않고, 그저 함께 걸어줄 것입니다.
자, 이제 첫걸음을 내디뎌보세요.
그 길 위에 있는 건 결국 당신 자신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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